본문 바로가기
43세 퇴사후 사회 적응기

인테리어 필름 접고 영업용 화물

by 사업가당 2024. 5. 17.

인테리어 필름을 접은 후 필자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 하였다.

고정비 즉 각종 공과금 및 보험료가 매월 발생하며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은 고등학생 연년생이라 돈도 억수로 들어 갔다. 가진 돈은 얼마 없고 직장을 얻자니 중년인 지금은 50세에 할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직장 다닐때 경력직도 외국어 하나 잘 하지 못하면 무용 지물이었다. 왜냐면 영어 같은 외국어를 못할경우 경력에 큰 의미가 없고 직장을 구한다 해도 강도 높은 노동 강도에 월급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어느날 문득 생각난 것이 사업이었다.

자 그럼 사업을 하려면 특정한 기술도 있어야 하지만 자금력도 좋아아했다. 

그 당시 필자는 자금력도 기술도 없고 당장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거리를 걷고 있는데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그리고 한참을 걷는데 화물차가 지나갔다.

순간, 아 그래 이거야. 평생 팬대나 굴리던 몸둥아리로 할수 있을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아보았다. 일단 택배는 배 넘버가 있어야하고, 일반 화물은 아바사자 의 넘버가 있어야 했다.

또한 용달은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을 구매하거나 빌려야 했다. 또한 일자리도 있어야 했지만 구하는 방법을 몰랐다.

여러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일단 월급제 기사를 타보고 차 후에 구매를 하던 빌리던 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업종들에 적정해도 될듯하다.

어느 지입 업체에서 넘버도 빌려주고 일자리도 주고 차도 싸게 해준다고 하여 계약을 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이것이 나에게는 비수로 꽂히는 상황이었다. 이정도만 설명하겠다.

그래서 차를 인도 받고 거래처 소개도 받고 운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재미 있었다. 남 눈치 안보며 내가 일하고 싶을때 일하고 쉬고 싶을때 쉬고 일을 하였다.이 또한 나의 큰 실수였다. 왜냐면 쉬는 만큼 자유로운 만큼 나의 수입은 줄어드는 것이었다.

거래처에서 월급처럼 한달에 한번 운송비를 지급 받았다. 우와 내 몸뚱아리가 아닌 화물차란 기계로 320만원을 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넘버 대여비 20만원 , 기름값 64만원, 톨비 28만원, 엔진오일 교환 85000원 , 식대, 등등 제하고 나니 순수 180만원이 최종 수입이었다.

다음달은 더욱 열심히 하였으나 순수 250 만원 , 최고로 순익 찍은게 310만원 정도다. 아무튼 300 정도 순익으로 3년여 운행을 하였다. 이런 차 주행거리가 38만에 가까워 지고 있었고 고장도 발생하기 시작하여 순익은 250원 내외로 횡보하게 되었다. 4년차가 되어갈때 차도 도로에서 섰다.

정비소로 갔더니 보링 해야 한다고 하며 차를 새차로 바꾸라는 조언을 들었다. 모아둔 돈도 없는데 이거 밑빠진 독에 물 붙기 였구나란 생각이 들고, 지입사나 거래처(오더 주는곳) 은 나를 빨대 꼽고 피빨아 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우 불량한 지입사란걸 알게되었다. 물론 괜찮은 지입사도 있다. 이것을 구분할 줄 알려면 반드시 기사를 타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업종이건 정직한 업체가 있고, 양아치 업체가 있듯이 화물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콜바리라고 차 와 넘버를 구입해서 직접 콜 어플 깔아서 다니면서 일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은 매우 수입이 낮지만 이러고 다니면서 거래처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렇해 거래처 와 콜바리를 병행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것이다.

거래처 70% 와 콜바리 30% 이 정도가 환상적일 것이다. 필자는 월급 기사를 탔었더라면 화물차는 적성에 안맞아서 안했을 것이다.

이것이 뼈아픈 실패로 5년 조금 못되어 화물차를 접었다.

다음에는 화물차를 그만두고 했던 일을 적어 보겠다.

 

 

 

 

 

 

 

반응형